의식 아래 감춰진 기억, 진실일까, 착각일까?
의식 아래 숨어 있던 기억.
그것이 진실일까, 아니면 진실처럼 만들어진 환상일까?
실종자 수사를 둘러싼 최면 기법의 그림자.
사라진 대학생, 반복되는 의심
2012년 가을, 경기도 고양시. 22세 대학생 이지훈(가명)은 친구들과의 모임을 마친 후, 자정 무렵 귀가 도중 실종됐다.
당시 그는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던 4학년이었고, 실종 전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생활해왔다.
그날 이후 그의 휴대전화는 꺼졌고, 택시 하차 지점 근처에서 신발 한 짝만 발견됐다.
경찰은 인근 CCTV와 차량 블랙박스를 조사했지만, 당시 골목 전체가 공사 중이어서 영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1년이 지나도록 단서 하나 잡히지 않자, 가족은 극단적 선택을 고려하던 중, 민간 수사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가 제안한 건 다름 아닌 ‘최면 수사’였다.
목격자의 기억을 되살려라
실종 당일, 이지훈이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친구 중 한 명인 박지수(가명)는
“그날 밤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장면이나 얼굴, 특징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민간 최면 수사관은 그녀에게 심리적으로 접근했고,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최면 상태에서 나온 증언은 다음과 같았다.
“누군가… 마스크를 쓴 남자가… 분홍색 운동화를 신었어.
뒷주머니에 무언가 길쭉한 걸 꽂고 있었어. 휘었어, 조금… 금속 같은 느낌…”
그녀는 평소 주의력이 떨어지는 편이었고, 사건 당시 음주 상태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묘사는 1년 후 한 지역에서 우연히 체포된 성범죄자의 체형 및 복장과 거의 일치했다.
이에 경찰은 다시 수사에 착수했고, 그 인물이 실종 당일 고양시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진술은 사실일까, 조작된 기억일까?
여기서 논란은 시작된다.
최면 수사로 얻은 진술은 법정에서 얼마나 유효할까?
기억은 흔히 감정, 암시, 질문 방식에 따라 쉽게 변형되거나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사건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점이 제기되었다.
박지수는 뉴스나 기사에서 범인 관련 이미지를 본 적이 없음을 주장했지만,
주변에서는 “그녀가 피의자 보도 내용을 봤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함
수사관이 유도 질문을 했다는 녹취 기록은 존재하지 않음, 그러나 최면 전 과정이 녹화되지 않았음
피의자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그의 차량에서 이지훈의 DNA나 물증은 발견되지 않음
결국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결론을 내리고,
사건은 다시 장기 실종 사건으로 분류되었다.
기억이 말하는 진실, 혹은 거짓
최면 수사는 1990년대부터 국내외에서 실종 및 강력 사건에 일부 도입되었지만,
기억 왜곡 가능성과 허위 진술 유도 가능성 때문에 여전히 논란이 많다.
이 사건 이후에도 몇 건의 최면 수사 사례가 있었지만,
결정적 증거 없이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16년, 부산 여성 실종 사건 → 최면 진술로 특정한 남성 체포, 무혐의
2018년, 전북 어린이 유괴미수 사건 → 목격자 최면 진술로 추적했으나 결국 엉뚱한 사람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최면 상태에서 떠오른 기억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처럼 느껴지는 상상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이나 피해자들은
“무엇이든 하고 싶다.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실마리라도 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까
이지훈의 부모는 지금도 그의 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책상 위엔 실종 당일 입었던 옷과 메모지, 휴대폰 케이스가 놓여 있다.
그들은 말한다.
“혹시… 누군가가 지훈이를 데려갔다면,
그 사람은 아직 그를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훈이도, 우리를 기억하고 있겠죠.”
최면으로 떠올린 기억은 증거가 되지 않았고,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기억은 사라져도, 누군가는 그를 계속 찾고 있다는 사실.